Book 돋우다

전염병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 <묻다>

베푸 2021. 2. 25.

 

산안마을 동물복지농장의 건강한 닭들이 ‘예방적’ 살처분 되었다. 그 수만 무려 4만마리에 이른다.

 

산안마을 소식을 듣고 달걀 파동? 글을 올렸고, 산안마을의 계란도 먹었던 사람이라서인지 계속 마음이 쓰인다.

 

살처분된 동물들은 그 후 어떻게 될까?

사체는 어디에 묻을까?

어마어마한 생명을 묻은 땅은 괜찮을까?

얼마나 지나야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까? 궁금한 마음에 이 책을 읽었다.

 

전염병에 대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

(책의 제목이 세로로 적혀서 더 가슴아프다)

 

이 책을 읽다 몇 번이나 책장을 덮었다.

 

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 읽는걸 좋아한다. 그런데 그렇게 읽을 수 없었다. 음악이 귀에 걸리고 커피가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자기전 고요와 어둠속에서 책만 비추는 북라이트를 켜놓고 읽는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도 읽을 수 없었다. 꿈에 나올까 무섭고 죄스러웠다.

 

다음의 내용을 읽은 뒤 더 미안하고 불편했다.

2010년의 경우 648만 마리의 가금류가 속절없이 파묻혔다. 그 중 99.999퍼센트가 ‘예방’ 을 위해 살처분 된 건강한 동물들이었다.

역학 조사 결과 조류독감의 발병과 확산 역시 감염된 철새에 의한 직접 전파가 아닌, 철새의 분변을 사람이나 차량이 농장 안으로 옮겨오고 오염 농장을 출입한 사료 차량이 이를 다른 농장으로 확산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전염병의 징검다리가 될까 봐 예방적 차원에서 멀쩡한 동물까지 숱하게 파묻으면서 정작 전염병을 옮긴 것은 인간의 부주의 였다니! 불에 덴 것처럼 속이 화끈거렸다.
84p

 

우리의 과도한 육식을 위해 케이지사육을 한것도 모자라 애초 감염도 인간의 부주의 였다니....

나도 불에 덴 것처럼 속이 화끈거렸다.

 

그렇게 죄없는 농장동물들이 억울하게 묻힌 땅은 어떻게 변했을까?

 

책장을 넘길수록 믿기힘든 현실과 만나게 되었다.

 

1. 구덩이를 파고 비닐을 이중으로 깐 뒤 동물을 밀어넣는다.

2. 그 위에 비닐을 덮고 석회와 흙 등으로 밀봉한다.

3. 사체가 썩는 과정에서 발생할 가스나 액체를 빼내는 관을 몇개 꽂는다.

4. 그리고 땅을 덮은 비닐 위에 3년동안 건드리지 말라는 표지판을 붙여둔다.

살처분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란다.

 

언뜻 들어도 생명존중은 커녕 방식에도 허점이 많아보이는데 아니나 다를까 2차환경오염발생이 다반사였다.

 

게다가 ‘집단가옥, 수원지, 하천 및 도로에 인접하지 아니한 곳’ 이어야 한다는 매몰지 선정기준 법규가 무색하게, 살처분은 매번 급하게 이뤄지는 바람에 하천변, 생수공장의 취수원, 무너질 위험이 있는 산비탈, 심지어 구석기 유적지에도 파묻었다고 한다.

3년이 지나면 매립지는 법적으로 다시 사용가능한 땅이 된다. 땅은 3년이면 엄청난 생명을 품은채 원래상태를 회복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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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얗고 고운 게 얼핏 밀가루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려고 쪼그려 앉았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것은 곰팡이! 곰팡이였다.
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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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지 오염에 관한 뉴스가 쏟아졌다. 피로 물든 지하수가 논과 하천으로 흘러나오고, 땅속에 가득 찬 가스로 인해 썩다 만 사체들이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는 엽기적인 뉴스였다.
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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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이는 액체를 토해내며 기이하게 죽은 풀을 보았을 때에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 독을 내뿜는 땅이라니, 대체 매몰지는 지금 어떤 지경인 것인가
11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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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물컹, 하고 땅이 꿀렁거렸다.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발길 닿는 곳마다 물컹거리며 바닥이 제멋대로 일그러졌다.
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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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알았다. 그때 드문드문 자라고 있던 풀이, 사실은 풀이 아니라 부추였다는 것을. 부추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가늘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곰팡이 핀 땅에서 자란 부추는 누구의 식탁에 오르게 될까? 불안과 불감 위에서 펼쳐지는 근면한 작물 재배에 분노와 두려움이 일었다.
1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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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아래에 또다시 싱싱한 초록이 가득 차올랐다. (...) 며칠 사이에 비닐 아래의 풀들은 새하얗고 투명하게 말라죽어 버렸다.
(...)
아직 여기 동물이 있다.
대지는 삼킨 죽음을 토해내고 싶어한다.
135-1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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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들은 구제역과 조류독감 매몰지 3년 후를 촬영한 것이며, 제목(사진 하단)으로 쓰인 숫자들은 그 땅에 묻힌 동물들의 수입니다. “

 

충격적이었다.

 

3년이 지나도 발을 딛으면 물컹거리는 땅

4년이 지나도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땅

지하수로 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침출수

몇 년이 지나도록 발생하는 가스와 악취

이 일을 겪고, 보고, 경험한 사람들의 트라우마

 

우리가 도대체 무슨짓을 한 것인가???

 


책의 후반부에는 전시회를 방문한 사람들의 반응이 나온다. 불쾌해 할 거라는 작가의 예상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미안해 했다.

 

묻힌 후에 어떻게 됐을까 궁금했는데 ..... 알려줘서 고맙다는 사람들.

 

우리가 무슨짓을 한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사람들.

 

평생 오리농장을 운영하셨던 아버지가 3년전 오리를 파묻게 된 충격으로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는 어느 관람객의 고백.

 

그림 가격을 묻길래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제사라도 지내주고 싶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사내.

 

자기가 크면 수의사가 되어서 동물들을 모두 치료해 줄거라고, 그러면 동물들을 파묻지 않아도 되고 땅이 아플 일도 없을거란 어린 관람객의 소감.

 

동물도 감정이 있고 감각을 느낀다.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만이라도 제대로 된 삶을 누릴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육식자라고 해서 동물이 불필요하게 겪는 고통과 괴로움, 학살에까지 동의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공범’ 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는 작가의 말이, 육식을 한다고해서 이런 참혹한 일에 동의한 건 아니라는 말이 여러사람에게 읽혔다.

다행이었다.

 

역시 희망은 우리에게 있다.

 

모두가 살처분 문제의 진실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문제를 공론화하고 논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국가란 국민들의 관심과 실천으로 경작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완제품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132p

 

그렇다 국가란 완제품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요즘 미얀마 상황을 보면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도 얼마나 어렵게 얻은 것인지 깨닫는다.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언제나 문제의식을 가진 소수의 움직임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뒷짐지고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한다. 서명에도 참여하고, 동물단체에 힘도 실어주고, 댓글도 달고, 리트윗, 리그램도 하며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작은일부터 해야한다.

 

정부가 미약하나마 제대로 된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농장들은 추이를 살피고 있다. 이 시점에서 소비자들이 고기 소비를 줄이고 비싸더라도 동물에 친화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농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안전하고 깨끗하며 건강한 미래가 아득히 먼 일만은 아닐것이다.
170p

 

지금처럼 매일, 거의 매끼니 육식을 하면서 변화를 이끌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육식을 줄이고 동물복지제품을 사는등의 실천이 반드시 따라야한다.

 

이 책은 2015년 까지의 사진과 활동을 담은 이야기다. (당시 기준 매몰지 4799곳) 그 후로도(지난주 까지도)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다. (현재 매몰지 10000곳 이상)

2016년(살충제 달걀 파동) 한 해에만 우리는 7200만여 마리의 닭을 죽였다. 올들어도 1000만 마리 이상의 닭이 살처분됐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선택을 통해 드러난다.”
매일매일의 작지만 아름다운 선택으로 우리 모두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더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180p

 

매 끼니 밥상에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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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이 책을 낸 출판사 ‘책공장 더불어’ 대표의 인터뷰를 한살림 소식지에서 본 적이 있다. 동물을 키우면서 자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김보경 님의 1인 출판사. 버림받거나 갇히거나 고통받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동물들을 위한 책을 내고 모든 책은 재생지 100%로 인쇄한다. 종이 질에 불만인 소비자에게 숲이 살아야 우리도 더 잘살 수 있다고 설득하는 ‘책공장더불어’ 출판사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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