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 에세이

베푸 2021. 4. 3.

 

 

엄마는 내가 참 좋을때 태어났다고 했다.

날이 따뜻해져서 개나리가 막 피기 시작하고 새싹이 돋는 참 좋을때라고...

 

나는 그말이 참 좋았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을 환영받는 말로 느껴졌다.

 

‘참~ 좋을때....’

 

지난주엔 내 생일이 있었다.

엄마는 잡채를 해왔고 곰은 드디어 미역국다운 미역국을 끓여줬다. (그동안은 벌칙같은 미역찜 이었다.😝)

 

날이 참 좋아 엄마와 산책을 나갔다.

그야말로 봄... 봄이었다.

 

개나리가 피고, 목련이 피고, 여기저기 진달래도 피기 시작했다. 하늘도 예쁘고 새는 노래하고

새싹들은 땅에서 힘있게 돋아났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생명의 기지개가 느껴졌다.

나뭇가지마다 맺힌 꽃봉오리들도 참 예뻤다.

 

가지만 덜렁 있더니 언제 이렇게 꽃봉오리를 맺고 언제 이렇게 싹을 틔워냈을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그 무엇도 봄이 오는걸 막을 수 없다는 싯구절이 생각났다.

 

꽃이 잔뜩피면 좋다고 몰려왔다가, 잎이지고 가지만 남으면 시들해지는 사람들의 소비적인 관심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자연의 흐름에 맞춰 해야할 일만 하고 있는 식물들의 모습이 대견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아름다운 호사를 누리다니....


그런데 이번주 같은길을 다시 찾았을땐 느낌이 많이 달랐다. 봄이 그새 한꺼번에 찾아왔다.

아직 개나리도 진달래도 목련도 피어 있는데 벚꽃까지 활짝 피었다.

 

3월 30일에 찍은 벚꽃사진

 

‘어... 이렇게 빨리... 한꺼번에 다 피면 안되는데..’

남쪽지방도 아닌데 3월말에 벚꽃이 만개하다니.....

산수유-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 철쭉의 순서로 서서히 하나씩 지고피고 지고피고 해야하는데....

 

개나리와 목련과 진달래 벚꽃이 한꺼번에 다 피어있는 봄이 어딘지 모르게 무섭기까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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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시베리아 한파로 내내 춥더니 2,3월 기온은 평년보다 3-5도나 높아 꽃이 일찍 피었다고 한다. 평년보다 20일 앞선 벚꽃 개화, 1922년 시작된 관측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작년보다도 약 일주일 빠른 개화라는 소식에 너무너무 예쁜 꽃 사진을 찍으면서도 맘이 좋지 않았다.

 

봄꽃들이 저마다 시기를 조금씩 두며 잎도 내기 전에 꽃부터 피우는건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다.

 

모든 생명의 최고 사명이자 존재 이유는 번식이다. 후손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남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정을 해야 하고, 수정을 하려면 곤충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곤충이 자선사업가는 아니라서 그 대가로 꿀을 취한다.

그런데 자잘한 꽃들은 곤충에게 제공할 꿀이 적다. 그러다 보니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큰 꽃과 경쟁하기 어렵다. 내가 벌이라고 해도 크고 화려한 꽃으로 날아가지 작은 꽃에서 수고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서둘러 꽃을 피려다 보니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공급하는 이파리를 틔울 틈도 없다.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하는 것이다. 자잘한 꽃들은 큰 꽃보다 먼저 펴야 하고, 큰 꽃은 자잘한 꽃에게 순서를 양보한다.

또 다른 전략은 무리를 지어서 흐드러지게 피는 것이다. 이유는 한 가지. 겨울 내내 굶주렸던 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작은 꽃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무더기로 펴서 나무 하나가 통째로 꽃으로 보이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정모,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중에서

 

며칠의 시간차를 두고 곤충을 유혹해야하는 꽃 입장에서도 이번 봄은 난감하다. 경쟁자가 너무 많이 같은 시기에 몰려있으니 죽을힘을 다해 핀 보람이 없다.

 

게다가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와 일찍부터 날리는 꽃가루 때문에 호흡기가 약해지거나 예민해지고 코로나 감염에도 취약해진다고한다.

 

 

기후변화로 강해진 꽃가루, 코로나19 감염률도 높인다

봄과 여름이 길어지고 기온이 높아지면서 짙어진 꽃가루 농도가 코로나19 감염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에는 되도록 실내에 머물 것을 전문가들은 권하고 있다.

n.news.naver.com

 

우리가 만든 기후위기가 다시 우리를 공격하고있다.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우리 엄마가 했던것처럼

‘참~ 좋을때’ 태어났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꽃들이 제멋대로 아무때나 피고 꽃가루가 날려 고생하는 시기를 시인은 ‘아~ 봄은 오고 있는가? 봄은 오고야 마는가?’ 열렬히 사모하며 기다릴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 잃어버린 땅에도 봄은 왔지만 우리가 만든 기후위기가 꽃들에게서 조차 봄을 빼앗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 미래세대에게서도 봄을 빼앗을지 모른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미래가 그리 밝을것 같지는 않다. 가장 급선무로 다뤄져야 할 기후위기 정책질문에 위정자가 되겠다는 유력 후보가 당당히 ‘답변거부’ 카드를 내놓을 수 있는 지금의 현실엔 우리의 무관심과 안이함, 욕심이 바탕으로 있을것이다.

출처: 청년활동가 네트워크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이 여기저기 터지는 꽃망울처럼 또 울린다.

 

How d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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