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돋우다

서울의 3년이하 서점들: 책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베푸 2021. 4. 23.

 

 

어릴때 동네서점의 추억이 있다.

전집을 사주는 대신 내가 원하면 하루 몇번이라도 서점에 가서 책을 사주던 엄마와 가장 오래, 가장 많이갔던 동네서점.

지하철 역 근처에 있던 ‘한양서점’.

외관도 실내구조도, 서점주인 아주머니의 헤어스타일과 표정도 기억나는 소중한 공간이다.

 

그 공간이 사라졌다.

얼마 후, 동네에서 제일 크던 2층짜리 서점도 사라졌다.

인터넷 서점덕에 책을 더 빠르고 편하게 살 수 있게 됐는지는 몰라도 계산대에서 아주머니가 책 표지를 정성껏 싸주시던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리는것도, 겨울이 되면 난로에 올려있던 주전자에서 따라주시던 보리차를 얻어먹는것도, 오며가며 들러 지난번 책은 어땠냐며 이야기를 나누는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신간이나 속편이 나오면 집에 전화도 왔다.)

 

속도를 얻은대신 공간과 낭만과 온기와 관계, 위안, 공감, 정 등등 .....

많은것을 잃었다.


도시를 떠나게 되면 작은 서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하고 있었다. 꼭 이루고 싶다기 보다는 막연한 꿈이랄까?

 

그런데 <평범한 결혼생활>에서 서점을 하고 싶다는 남편을 뜯어말릴때 이 책을 던져줬다고 한다.

‘하아~ 뜯어말릴때 준 책이라니... 분명 긍정적인 이야기는 아닐테고, 이 소박한 꿈 조차도 실현가능성이 없는건가?’ 궁금해서 책을 읽어보았다.

 

제목 그대로 서울에서 오픈한지 3년 이하인 동네서점을 찾아가 인터뷰한것을 묶어놓은 책이다.

 

서점에 대한 생각이나 운영방침, 커피나 맥주같은 부가적인 것으로 수입을 올리는 일에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달랐지만 동네서점을 운영하며 느낀 몇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1. 서점은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다. 그런 생각이라면 시작도 말아라. (돈이 많아서 취미로 하는거면 낭만적일 수도 있다.ㅋㅋ) 생계를 감당할 수 없으니 부업을 하게 되거나, 서점업무만해도 자잘한 일이 많아서 책을 읽을 시간이 더 줄었다. 서점은 기본적으로 내 공간이 아니라 손님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2. 손님들이 서점을 서점으로 인식하지 않고 이미지 소비공간으로 인식한다. 사진만 찍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 무례하게 느껴진다.

3. 도서정가제는 허울만 좋은제도다. 10% 할인과 5% 적립이 아직 허용되는데 ‘도서정가제’ 라는 이름을 붙인것도 웃기다. 완전 정가제가 되지 않는한 인터넷서점에 유리하다.

더 큰 문제는 대형서점과 작은서점의 공급률 차이다.

 

공급률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한겨레 기사를 읽고 막연히 ‘문제가 있구나~’ 생각했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판매율이 높고 대량주문을 하는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공급률이 60% 수준이라면 동네서점의 공급률은 70~ 심하면 85% 까지라고... 여기에 카드 수수료는 별도이기 때문에 만원짜리 책 한권을 팔면 천원 남을까 말까라고 한다.

 

자본주의 원리로 많이 사면 더 많이 깎아주는게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 상황에선 적은 공급률로 인터넷서점에 공급하면 출판사나 총판에서도 손해라 그걸 동네서점 공급률에서 보완하는 식이란다.

 

하아~ 읽다보니 답답하고 화가났다.

세상은 오직 자본만을 중시하여 큰 것들의 배를 불리는데 최적화 되어있다.

 

소비자도 서점을 책을 사러 들어오기보단 SNS에 올릴 사진을 찍으려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단다. 양해도 구하지 않고 사진만 찍다가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쁜 카페에 가서도 내가 주문하지 않은 음식을 찍고 나가는 경우는 없지 않냐며 서점사진을 찍어대는것과 서가의 배치나 큐레이션을 아무것도 아니게 대하는데 화가난다고 했다. 심지어 책 안의 글 한페이지를 찍어 sns에 (마치 읽은 듯) 올리려고 오는 사람도 있다고....

 

예전에 군산의 마리서사에 갔을때 일본식 근대가옥에 차려진 아담하고 예쁜 서점의 모습이 좋아 사진을 찍었더니 매우 불쾌해하신 기억이 난다. 죄송하다고 하고 책에 대해 물었을땐 또 매우 친절하게 답해주셔서 책과 엽서를 추천받아 사왔는데 그때 책방지기님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런데 공급률 이야기를 제외하면 생각만큼 인터뷰내용이 부정적이진 않았다. 한 서점주인은 월세를 낼 수 있으면 마이너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까지 했다. 생활비는 전혀 벌지 못하지만 서점을 유지할 수는 있으니 이어갈 수 있지 않겠냐며....

 

장단점이 있겠지만 덜 벌어도 이 생활이 좋다고도 했다.

 

먹고살기 쉽지 않지만 하루하루가 온전한 내 소유의 삶이 되었고 내 삶을 산다는 데 만족을 느낀다고도 했다.

 

이렇게 바라는 것이 크지 않은 선하고 작은 것들을 이용하고 삼키려고만 드는 세상이란....!!!!!

(인터뷰이 7명이 운영하는 책방중 현재도 운영중인 곳은 3곳에 불과하다)

 

책장을 덮은 뒤 다음 두 글이 머릿속에서 번뜩 떠올랐다.

 

가진 자가 더 갖기 위한 거대한 시스템으로 구조화된 세상에서, 나는 그냥 밥 먹고 숨 쉬고 애들 키우고 일상을 사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된다.
(...)
발길 닿는 대로 욕구를 따르는 일이 큰 것의 배를 불리고 작은 것을 소멸시키는 순환 고리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오싹한 일이다. 소비자 정체성으로 포인트 적립하다가 하루를 보내게 만드는 자본의 천국은 얼마나 무서운가. 내 삶을 찬찬히 돌아보고 글로 적어 두기. 이 세계의 무자비한 힘에 끌려가지 않기 위한, 태어난 것을 덜 후회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은유, <쓰기의 말들> 중에서

 

독서는 마땅히 지녀야 할 공포를 품고 살도록 격려한다. 여린 영혼들과 미물들이 상처 받을까 졸이는 가슴을 주고, 사회적 약자가 팽팽한 생존의 줄을 ‘툭’ 하고 끊어 버릴까 겁을 내게 해 준다. 입시전쟁, 취업전쟁, 출근전쟁이란 말에서 보듯 생활이 곧 전쟁인 야만의 사회, 나 살자고 하는 행동이 남의 생의 의지를 말살하는 사회에서, 책은 상처 주고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이 세상을 정글로 만들지 않는 방부제가 됨을 일러 준다.
박총, <읽기의 말들> 중에서

 

동네서점 인터뷰를 할 때마다 공급률 문제를 말했지만 단 한군데에서도 기사화 되거나 방송되지 않았다고 한다. 눈 떠 있는 내내 무언가를 보고 들어도 정작 꼭 알아야 할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무지한 이유가 여기에있다. 미디어는 소비주의의 나팔수 역할 외엔 기능을 거의 상실했고 이 세상은 재화를 얻는일 외엔 관심이 없다.

 

내심 포기를 기대했던 ‘막연한’ 내 꿈의서점은 책을 읽고 난 뒤 더욱 ‘막연’해 졌어도 한가지는 분명해졌다.

 

죽는 날까지 읽고 쓰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것!!!

그것이 내가 큰것들의 배를 불리고 작은것들을 소멸시키는데 최적화 된 이 세상에서 소비기계로만 살아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기어이 책을 팔겠다고 문을 여는 서울의 오픈 3년 이하 소규모 서점들과 인터뷰했다. 인터넷 서점과 대형 서점이 각축을 벌이는 각박한 환경 속에 그들이 직면한 현실을 묻는다. 서점의 당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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