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기후위기/착한 소비는 없다

전동공구를 정리하며 생각한것 (천민 자본주의 vs 지역공동체)

베푸 2021. 5. 11.

 

 

육중한 몸체를 가지고 있어 한자리 떡하니 차지한다. 없어도 살 수 있지 않느냐고 비워볼랬는데 그래도 일년에 한 두번은 쓴다. 자주필요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데 빌릴수가 없다.

 

전동공구 얘기다.

 

이사와서 초기에 공구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냉장고 위 선반이며, 가구를 조립하거나 분해하는일이 많아 공구가 필요했었다.

그때 우리 옆집은 동네 슈퍼마켓이었는데 이사 온 첫날부터 주인 아주머니가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택배를 대신 받아주신것이 감사해서 드링크제 한박스를 가져다 드렸더니 이웃끼리 당연한 걸 뭐 이런것까지 갖다주냐시며 옆집에 이사온 새댁으로 더 잘 대해주셨다.

 

아저씨는 건축관련일을 하신다고 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적은 없지만 수시로 물건을 사며 오갔던 짧은 대화 속에서도 알게되는 정보였다.

 

어느날, 급하게 망치와 공구가 필요해서 혹시나 하고 여쭤봤더니 흔쾌히 빌려주셨다. 방법을 알려주시기도 했고 옆집이라 쓰자마자 바로 갖다드릴 수도 있었다. 재개발 열풍으로 집값이 미쳐 날뛸때 그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왔다. 아주머니는 가게를 정리하며 매우 아쉬워하셨다.

막상 가장 필요하고 자주 썼던 시기엔 슈퍼마켓 아저씨 덕에 빌려쓸 수 있었는데 가게가 사라진 뒤로 우리는 공구를 장만해야만했다.

 

가족과 혈연, 지연관계 속에서 돈이 끼어들지 않고 이루어졌던 인연을 끊음으로써, 유상으로 제공되는 ‘편리함’의 시장은 형성된다. (...)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끊으면 끊을수록 노동과 시장 양면에서 경제를 확대시킬 수 있다.
우리사회가 지금까지 일관되게 인간관계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온 것은 그 때문이다.
후쿠오카 켄세이, ‘즐거운 불편’ 중에서

 

공구를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동네에 누구 하나 가지고 있으면 빌려쓸 수 있었던 인정넘치는 사회에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오며가며 마주쳐도 인사도 안하는 사회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절’을 통해서만 더 많은 소비가 가능해지고 ‘유상’의 서비스를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앞에 '천민' 이란 수식어가 붙는건 괜한일이 아니다.

 

'응답하라 1998'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연탄100장 쌓아두고 살면 소원이 없겠다." 는 대사가 나오는 ... 지금과 살림살이가 비교도 되지않던 시절을 두고 사람들은 인간성이 살아있던 시절이라며, 정이 느껴졌던 좋았던 때라 추억했다.

엄마는 그 드라마를 보고 내가 어렸던시절 친하게 지냈던 동네 이웃들을 떠올리며 이웃간의 정을 그리워했다.

그 시절엔 갑자기 나가봐야 하는일이 생겨도 안심하고 나를 이웃에 맡길 수 있었다고 했다.

한번은 마당에서 보행기를 타고 놀던 나에게 동네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돌이 날아들었단다. 날아드는 돌에 머리를 맞아 피가 철철 흐르는 나를 안아들고 병원으로 뛰고, 애보다 더 우는 엄마대신 나를 안은채 치료실에 들어간 동네 아주머니에게 지금도 참 감사하다고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아이유)은 다시 태어나면 이 동네(후계)에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또 드라마 ‘동백꽃 필무렵’에서 동백이를 범죄로부터 보호한건 힘없고 평범한 동네 사람들이란 작은 공동체이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이전에 누렸던 많은것을 잃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과연 축소된 소비심리와 경제성장일까?

 

 

얼마 전 지역 소식지를 받았다.

마을사업으로 공구를 빌려준다고 써있었다. 이제 진지하게 공구를 비워낼 것인지 생각해봐야겠다.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이기 어려워진 지금이야말로 사람과 사람사이를 가로막는 유상의 편리함을 걷어내고 동네 작은 공동체를 살릴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 함으로써 진정한 인간다움을 회복할 어쩌면 마지막 기회이다.

 

내일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는대신 어르신들이 하시는 동네 카페에 들러야겠다. 어색하지만 가는길에 만나는 이웃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야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냉정한 자본이 들어와 갈라놓았다면 그 자본과 자본 사이를 인정의 온기로 녹일 수도 있지 않을까? 뭐든 돈으로 해결해야하는 지금의 시스템에 우리 모두 지쳐있는것만은 분명하다.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는 처음부터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생명을 영위하는 것은 우연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책임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의식과 삶의 집적 위에서만이 지역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지연을 중요하게 여겼다. 공동체가 약화되어 가고 있는 지금, 다시 한 번 지연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런 고민을 할 때 돈을 얼마나 가졌는지는 큰 의미가 없다.

히라카와 가쓰미, <소비를 그만두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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