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돋우다

권여선의 <오늘 뭐먹지?>, <안녕, 주정뱅이> - 기쁨과 고통의 술국어를 나누며 같이 취하고 싶어졌다.

베푸 2021. 5. 26.

 

 

< 오늘 뭐먹지?> 를 읽었다.

술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며 작가의 이미지가 그쪽으로 굳어지는건 좋지 않다는 지인들의 구박에 술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전작을 쓰느라 고생을 바가지로 한 작가가 자신의 모국어인 술국어로 쓴 글이라 글에 날개가 돋혔다.

들어가는 말부터 시작해서 읽는내내 빵빵 터지고 글로만 된 안주 설명에도 침을 흘렸다.

작가의 글솜씨에 반하고 표현에 감탄하며 너무도 유쾌하게 읽었다.

 

 

친구들 구박의 원인을 제공한 작품 <안녕, 주정뱅이> 가 궁금했다.

<오늘 뭐 먹지?> 와 같은 유쾌함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건… 응??? 낚였??

 

이게 뭐지? 하는 느낌도 잠시, 이내 술의 다른 속성을 다룬 작품을 읽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술은 재미있고 기쁠때 맛있는 안주를 더 맛있게 느끼게 해주는가 하면 너무도 고통스러워 생의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지경에서 쓰디쓴 인생의 맛을 깨닫게 하는 요물이지 않은가?

 

<안녕, 주정뱅이>는 내 예상에서 완전히 빗나갔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쉽사리 위로를 건넬 수 없이 슬프고, 노련했다.

 

마치 어느 술자리에서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 “저 사람 노래 참 잘하네. 재미있는 양반이야~”

했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애드시런인

영화 속 한장면 같았다.

 

이 작가 너무 위트있다. 이런 표현은 어떻게 가능하지? 푸하하하 하며 방심하고 있었더니 태도를 180도 바꿔 정색하고 진짜 실력을 보여주었다.

 

<안녕, 주정뱅이>는 술에 취하거나 알콜중독이거나 술을 마시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단편 모음집이다. 아니 삶이 고통스럽고 지치고 외롭고 비굴해서 술을 마실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첫 작품 봄밤부터 너무 좋더니 실내화 한켤레, 층까지 모든 작품이 다 인상깊었다. 중간중간 안주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오늘 뭐먹지?>가 슬쩍 오버랩되기도 했지만 웃음기 없는(아니 웃을 수 없는) 진지한 작품들이었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소개글에서

“ 인생이 던지는 잔혹한 농담,

그 비극을 견디는 자들이 그리는 아름다운 생의 무늬 “

“ 인생이 농담을 하면 인간은 병들거나 술을 마신다… 지독한 생에 거꾸러진 주정뱅이에게 건네는 쓸쓸한 인사 “ 라고 이 책을 표현했다.

 

각자의 슬픈 사연과 등장인물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가 가나 누구에게도 잘못이 있지 않다. 삶에서 이런 비극은 왜 일어나는가? 왜 하필 나인가? 에 대해 답을 하기란 요원하다.

 

“인생이 잔혹한 농담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그래서 적절한 설명일것이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말들은 다 위선으로 보일지 모른다. 나조차도 위로가 또 다른 상처가 되는 경험을 해본적이 있다. 말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위안이 되지 않아 겨우 버티고 숨쉬고 있는 인생에게 권여선은 쓸쓸한 인사를 건넨다.

 

안녕, 주정뱅이!

 

섣부른 위로가 아닌 고통의 언어로…

 

<오늘뭐먹지?> 에의 유쾌하고 입맛돋는 맛깔난 언어도, 지독하고 악의적인 우연을 서술하는 <안녕, 주정뱅이> 의 날선언어도 참 좋다. (스스로 밝혔듯이) 권여선의 모국어는 그러므로 술국어임이 분명하다.

 

술자리는 내 뜻대로 시작되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다 결국은 결핍을 남기고 끝난다. 술로 인한 희로애락의 도돌이표는 글을 쓸 때의 그것과 닮았다

 

‘술’과 ‘설’은 모음의 배열만 바꿔놓은 꼴이다. 술을 마시기 위해 거짓 ‘설’을 연기하던 나는 어느덧 크게도 아니고 자그마하게 ‘설’을 푸는小설가가 되었다.

(…)

몇번 입술을 깨물고 다짐도 해보았지만 그래도 나란 인간은 (A와 마찬가지로) 결코 이 판에서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소설집> 작가의 말 중에서

 

이 판에서 먼저 일어나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퍽 마음에 든다. 그의 모국어를 더 오랫동안 읽고싶다.

 

안녕 주정뱅이

비극적 기품이 담긴 일곱 편의 단편장편소설 《토우의 집》으로 제18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권여선의 다섯 번째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2013년 여름부터 2015년 겨울까지 발표한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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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많아도 맛없는 안주는 없다.음식 뒤에 ‘안주’ 자만 붙으면 못 먹을 게 없다.”소설가 권여선의 ‘음식’ 산문을 가장한 ‘안주’ 산문집 먹고 마시는 이야기에서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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