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상은 간만에 제대로 차렸다.
일요일엔 떡볶이 해먹었고, 월요일엔 장보러 나가서 사먹은 감자 핫도그 하나로 때웠고, 어젠 외식했으니 나흘만인가?
냉장고 속 재료들에게도 미안하고 속도 영편치 않아서 채소 스페셜로다가 차렸다.
초당옥수수로 밥하고, 브로콜리 데쳐서 무치고, 상추겉절이도 만들고…
지난번에 너무 맛있게 먹었던 양배추 볶음이 또 생각나서 양배추를 볶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아뉘~ 그냥 올리브유 두르고 센불로 볶다가 허브소금이랑 후추만 뿌렸는데 이렇게 맛있을 일이냔 말이다. 아삭하고 달큰하며 고소한것이… 제철 채소의 오묘한 맛이란..
너무 맛있게 된 것이 신기해서 간본다는 핑계로 양배추를 계속 집어먹다가 작은 조각 하나를 떨어뜨렸다.
왼쪽 팔에… ㅠㅠ 맨살인데……
뜨어~ 소리가 저절로 나게 아팠다.
방금전까지 후라이팬 위에 얹어져있던, 뜨거운 기름코팅을 입은, 반짝반짝 예쁜 양배추 조각이 내 팔위에 있는 것이다.
금방 부풀어 오르더니 하트 얼음으로 찜질을 해줬는데도 이렇게 데인자국이 남았다. 화끈거렸다.
곰이 들어오자마자 일렀(?)다.
내가 팔을 데였다며… 양배추가 내 팔에 들어붙었었다며 얼마나 따가운지 아느냐고 묻지도 않는 곰을 붙들고 얘기해주었다.
곰은 괜찮다고 금방 아물거라고 했다.
(음~ 썩 훌륭한 대답이 아니다.🤔)
옛날부터 느끼는건데 아픈건 나다.
내가 안괜찮은데 왜 다 괜찮다고 하는건지… 아이가 넘어져도 괜찮다고 하고, 누가 힘들어해도 괜찮다고 하고..
누가 나한테 투정하면 나는 괜찮다고 말하지 않고 ‘괜찮냐?’ 고 물어야지! 생각하며 밥을 푸러갔다.
그런데 이번엔 미역국이 문제였다.
오늘은 초당옥수수밥이라 국을 조금만 곁들이려고 밥그릇에 담았더니 공간이 좁아서 그랬는지 미역이 내 손가락에 붙었다.
“ 끄아~!! “
양배추보다 더 뜨거웠다. 손을 놓으면 그릇을 놓치기 때문에 바로 떼지도 못하고 있었더니만 미역조각이 물에젖은 수영복처럼 내 손가락에 아주 찰싹 붙었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곰한테 국 좀 퍼담으라고 하고 또 하트 얼음으로 열기를 식혀주었다.
아까 팔은 하트얼음 하나로 괜찮아졌는데 손가락은 하트얼음을 두개나 써도 화끈거렸다.
물집도 잡히려고 하는거 보니 더 많이 데인 모양이다.
아~ 오늘 수난의 날이구나ㅠㅠ
양배추와 미역이 나한테 들러붙어 상처입은날 ㅠ
손가락이 너무 화끈거려서 밥먹을때도 얼음을 감아놓고 먹었다. 그런데 평소에 아무일도 안하는것 같았던 왼손은 식사시간에 꽤 도움을 주는 녀석이었다. 밥그릇도 안움직이게 잡아야하고 중간중간 거들 일들이 있었는데 못움직이니 불편했다.
“왼손아 너 그동안 하는일이 있었구나? 몰라봐서 미안..”
밥상에서 곰에게 말했다.
“이거 내 피로 차린 밥상이야… ㅠㅠ “
그러다 다시 생각했다.
‘피는 아닌가?’
정정했다.
“이거 내 살로 차린 밥상이야… ㅠㅠ “
그런데 그 말이 더 잔인하게 들렸다.
‘내 살로 차린건 아니지…’
“그럼 뭐라고 하지? “
그랬더니 곰이 맛있게 먹다가 대답했다.
“상처!!”
아~ 상처! 그것도 쏙 맘에 드는 낱말은 아니지만
그냥 그걸로 하자.
“이거 내 상처로 차린 밥상이야. 맛있게 먹어.”
안영광의 상처!! 아퐈!
덧,
그리고 밤에 채수를 끓이며 간보다가 입술도 데었다.
오늘 일진이 사납던지 내가 제정신이 아닌 날인가보다. 얼른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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