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 에세이

환경을 위한다는 착각

베푸 2021. 6. 26.

 

 

마크로비오틱 수업에 다녀오면서 빵을 샀다.

맛있는 캄파뉴 사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서 단호박 깜파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텀블러랑 우산 챙겨 나오느라 오늘은 장바구니를 안들고 나왔다. 그래서 또 종이백을 받아버렸다.

 

이럴때마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고 생각한다.

그래도 종이봉투인데 비닐보다야 낫다고 합리화한다.

 

우연히 이 카드뉴스를 보았다.

 

비닐은 어떻게든 안받으려 노력하지만 종이는 ‘친환경’ 이라는 생각이 내게도 있다. 종이봉투를 받아도 버리지 않는다고, 이것저것 담는 봉투로 재사용하고, 모아두기도 한다고 합리화 한다.

 

그런데 44번이나 써야 환경에 좋다고 한다.

무려 마흔 네 번!!!!!

 

그렇게 쓴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두 세번 다시 쓰기는 하지만 종이봉투가 그 이상 사용해도 좋을 정도로 내구성이 강하지도 않을 뿐더러 물이라도 묻으면 찢어지는것도 예사다.

 

비닐봉지는 그 시초가 이런 종이봉투를 대신하기 위한 ‘친환경 발명품’ 이었다.

스웨덴의 공학자 구스타프 툴린은 한번 쓰고 버리는 종이봉투가 아까웠다. 종이제조를위해 어마어마한 나무가 베어지는걸 안타까워한 그는 나무를 절약하려고 종이봉투의 대체품으로 1957년 비닐봉지를 발명했다.

 

더욱이 비닐봉지는 일회용품으로 발명한것이 아니었다. 종이봉투와 에코백을 대신해서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도록 가볍고 질긴 플라스틱 백을 만든것이다. 그런데 가격이 싸다보니 한번쓰고 버리는것이 당연해지고 발명 몇십년 만에 지금 우리가 이런 환경문제를 겪고 있는 것이다.

 

비닐이냐 종이냐, 원료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뭐든 한번 쓰고 버리는 ‘편리와 낭비’에 문제가 있다.

 

장바구니가 비닐봉지보다 친환경적이려면 한 개의 장바구니로 100번은 써야한다.

텀블러가 일회용 컵보다 해를 덜 끼치려면 한 개의 텀블러를 1000번은 써야 한다.

에코백이 일회용백보다 환경 친화적이려면 7천 100일 이나 들고 다녀야 한다.

 

포인트는 ‘무엇을’ 이 아니라 ‘얼마나 적게, 얼마나 오래’ 에 있다.

 

‘종이는 괜찮다.’

‘이번 한번은 괜찮다.’

‘어쩔 수 없다.’ 라고 생각하지 않겠다.

비닐은 어떻게든 안쓰려고 애쓰고 플라스틱도 거부하면서 종이봉투는 일회용으로 쓰는 일을 하지 않겠다. 비닐대신 종이를 쓰면서 나 정도면 잘하고 있다, 환경을 위한다고 착각하지 않겠다.

 

최근 환경이슈가 커지고 우리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기후위기의 징후도 가까이에 일어나니 ‘무해한’ 이라는 워딩이 붙은 책이나 기사를 자주 접한다.

 

현대사회에, 이런 생활을 유지하려면 지구가 3.3개나 필요하다는, 국가규모대비 탄소배출 1위라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무리 친환경 실천을 열심히 잘한다고 해도 절대 ‘무해’ 하지 않고 ‘무해’ 할 수도 없다.

 

<사피엔스>의 한 문단을 빌린다.

우리 조상들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았다는 급진적 환경보호운동가의 말은 믿지 마라. 산업혁명 훨씬 이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생물들을 아울러 가장 많은 동물과 식물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불명예를 갖고있다. 만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멸종의 제1의 물결과 멸종의 제2의 물결에 대해 안다면, 스스로가 책임이 있는 멸종의 제3의 물결에 대해서 덜 초연한 태도를 보일것이다. 만일 우리가 얼마나 많은 종을 절멸시켰는지 안다면, 아직 살아남은 종들을 보호하려는 의욕이 좀 더 생길것이다.

- 유발하라리, <사피엔스> 중에서

 

우리가 얼마나 유해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이 삶이 얼마나 많은 착취와 파괴위에 돌아가는 세계인지 직시해야한다.

그러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조금은 더 불편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생길것이다.

 

 

텀블러를 들고 나오지 않으면 일회용컵엔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그렇게 습관을 들이니 이제 외출시엔 꼬박꼬박 챙기게 된다.

장바구니를 들고나오지 않으면 소비도 하지 않아야겠다.

 

비닐이든 종이든 박스든 생분해용기든 플라스틱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일회용으로 쓰는일을 경계할 것이다. 한 사람의 실천이 결코 작지 않은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쓰는 한 장의 영향이 적지 않은것도 사실이다.

 

 

종이는 친환경이 아니다.

그러니 괜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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