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 에세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 (ft. 쉼보르스카)

베푸 2021. 6. 28.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가끔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되는 때도 있다.

친구가 7살 밖에 안 된 어린 딸을 야단치면

“필요도 없는데 뭐하러 낳았어?” 라고 묻는다길래 그 나이부터 벌써 존재의 이유에 대해 고민할 수 있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집을 즐겨 읽지 않는다.

윤동주의 시를 사랑해서 같은 시집도 판본별로 갖고 있고 백석은 평전까지도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예찬하는 김수영도 잘 모르겠고 …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다.

서른이 될 때 최승자 시인의 ‘삼십세’ 에 잠깐 열광했던것이 기억에 남는 나의 시 생활이다.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는건 시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시어의 의미나 형식따위를 해석하는 잘못된 교육탓이 크지만 시에 맞는 독서법을 몰라서라는 글을 읽은적이 있다. 시가 어렵고 이해가 가지 않으면 그 시는 내 시가 아니니 그냥 넘기면 된다. 억지로 이해할 필요도 좋아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그냥 계속해서 시를 만나다 보면 내 가슴에 와닿는 시를 발견하게 되고 그 시만 반복해서 읽으면 된다고 했다.

 

오늘 어렴풋이 그 경험을 한 것 같다.

책을 읽다가 인용된 쉼보르스카의 시가 가슴에 와 닿았다. 책을 읽다 멈춰 이 시를 필사했다.

 

기억하고 반복해서 읽고 싶어 여기도 기록해둔다.

 

“나는 누구인가? 왜 하필 이 시기에 이 나라에 이 도시에 태어나 이 사람들과 이렇게 사는가?” 라는 생각이 들면 이 시를 꺼내 천천히 한줄씩 다 읽고 그때마다 제목의 의미도 생각하면 좋겠다.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 사람인 걸까요?

나머지 다른 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이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

새들의 둥지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비늘이 아닌 피부로 숨을 쉬면서?

잎사귀가 아니라 얼굴의 거죽을 덮어쓰고서?

어째서 내 생은 단 한번뿐인 걸까요?

무슨 이유로 바로 여기, 지구에 착륙한 걸까요? 이 작은 행성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나 여기에 없었던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무엇 때문에 천인도 아니고, 강장동물도 아니고, 해조류도 아닌 걸까요?

무슨 사연으로 단단한 뼈와 뜨거운 피를 가졌을까요?

나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왜 하필 어제도 아니고, 백 년 전도 아닌 바로 지금

왜 하필 옆자리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도 아닌 바로 이곳에 앉아서

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걸까요?

마치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으르렁대는 성난 강아지처럼.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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