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 에세이

줄 때의 예의

베푸 2021. 7. 23.

 

 

오늘은 마크로비오틱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다.

 

코로나가 심상치 않아서 또 취소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는데 마지막 남은 하루라 그냥 진행하기로 정해졌다. 다행이었다.

오늘의 메뉴, 안그래도 좋아하는 지라시 스시는 손 많이가는 토핑을 종류별로 올려서 색도 곱지만 맛도 고왔다.

 

날더워서 아무것도 하기싫은게 사실인데 이건 꼭!! 해먹어야지 다짐(?)했다.

말복에 도전할까나? ㅎㅎ

 

휴가인 곰이 콧바람도 쐴겸 날 데리러 온다고 해서 ‘같이 뭘 할까?’ 했는데 해가 너~ 무 너무 뜨거웠다.

지나가다가 들른 서울공예박물관은 사전예약방문만 가능하고 현장에서 예약가능한 자리가 없단다. 방학이고 덥고 갈 데가 없으니 각종 전시며 박물관까지 예약이 꽉 찬 모양이다.

 

걷다가 길에서 쓰러질정도로 날은 덥고, 별 계획없이 나온 우리가 갈데가 있나… 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책 한권씩 사들고 가까운 카페에서 읽는것으로 데이트를 대신했다.

 

 

나는 그동안 노려만 보았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를 드뎌 시작하고, 곰은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의 세계관이 담겼다는 <북유럽 신화> 를 사서 각자 읽는데 첫장부터 좋은 구절이 나왔다.

 

•지식은 소유하지만 지혜는 실천하는 것이다.

•요즘 대학에선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철학에 대한 것만 가르친다.

•철학과 철학을 논하는 것의 차이는 와인을 마시는 것과 와인에 대해 논하는 것의 차이와 같다.

•지혜는 이해하고 이행하는 것이다. 한 철학자의 말처럼 우리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

 

구절구절들이 참 좋아서 위의 사진을 sns에 공유했다.

 

책을 읽다가 공유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로 자주 올린다. 속상했던 마음이 진정되기도 하고, 우리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하며, 어떤 실천을 독려하는 내용이 담긴 구절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다.

 

대부분은 저자와 책제목도 같이 올리는데 자리가 모자라거나, 이미 올렸던 책이거나, 책 제목이 길거나.. 등의 경우엔 그냥 내용만 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구절만 올렸더니 책제목이 궁금하다고 묻는 DM을 받았다.

 

DM을 자주 받는다.

지금처럼 책 제목이 뭔지 묻기도 하고, 내가 올린 레시피에서 궁금한점을 묻기도 하고, 내가 사용하는 그릇이나 조리도구, 재료의 구입처를 묻기도, 본인은 왜 똑같이 안되는지 해결책을 묻기도 한다 ㅎㅎ

 

대부분의 경우는 친절하게 답변을 한다.

특히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질문이면 두손두발 다 걷고 적극적으로 답변하지만 기분 좋지않은 경험도 여러번했다.

 

기껏 레시피며 구입처며 자료등을 보내줬더니 그걸로 끝!!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쌩~ ! 하고 가버리는 경우가 많고(글인데도 가버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원래 소통을 하던 사이도 아닌데 인사나 들어가는말(저기~ , 혹시~, 실례지만~, 등등)도 없이 본론부터 말하기도 한다. ( 제목이 뭔가요?, 그릇은 어디꺼에요? 00은 어디서 구했나요? 등)기껏 이야기 해주면 (아~ 읽게될지 모르겠네요, 구할 수 있으려나? 해먹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등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럼 왜 물어보셨나요? ㅠㅠ 그리고 그걸 굳이 저한테 이야기 할 필요가…)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의 Dm을 받는게 달갑지 않다.


그런데 얼마 전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때 우리는 쉽게 오만해진다. 거기에 뒀으니까 가져가세요, 싫으면 마시고요, 하고 자신도 모르는 갑질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 걱정이 된다고,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00하고 싶다고, 그러면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한다고, 초면에 결례를 무릅쓰고 메세지를 드린다고 (…)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한 개인의 격이라는 것은 이처럼 받을 때가 아니라 줄 때 드러나는 법이다. “

-김민섭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중에서

 

이 구절을 읽을때 뒷통수를 얻어맞은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쉽게 나도모르는 갑질을 해왔던가?

작게는 당근마켓에 무료나눔을 할 때도 보통 거래할 때와는 달리 ‘우리집 앞에 올 수 있는 있는 사람만 연락을 달라’고 적어두었는데 그건 ‘내가 무언가를 주면서 너를위해 거기까지 나가고 싶지 않다’, ‘갖고싶으면 니가 와라’ 라는 마음이 함의된 표현이었다.

 

소통이 없는 사람들이 Dm하는게 싫은 이유도 그런 마음의 반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엔 ‘나한테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날 귀찮게하고, 고맙단 말도 없이 그냥 사라져?’ 하는 오만이 들어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갑자기 내가 혐오스러웠다. 당장 당근마켓의 무료나눔 글부터 판매글과 똑같이 바꿔두었다.

 

줄 때 주는걸 의식하는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끔찍한가?

 

오늘 Dm을 받았을때 그 생각이 났다.

 

그리고 앞으로 Dm에도 댓글에도 열심히 답하고 누가 뭘 물어봐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친절히 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물을 할 때도 유무형의 가진걸 나눌때도 늘 명심!!

무례한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그건 그들의 문제다. 나는 받을때 고마워하며 예의를 다하는 것처럼 줄 때의 예의도 갖출 뿐이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입니다.”

내가 대답을 하고 잠시후에 다시 메세지가 왔다.

“ 아하, 그 유명한 책이군요! 답변 🥔합니다😁

 

기분이 좋았다.(‘감자’합니다. 부분이 특히 귀여웠다 ㅎㅎ)

 

보통, 사람이 뭔가를 받게되면 저절로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말이라도 곱게 나가기 마련이다.

받았을 때 상대의 마음과 정성, 의도 등에 대해 감사인사를 잊지 않는것도 기억해야 할 문제지만 줄 때 되도않는 갑질이 들어있지는 않은지, 오만한 마음이 들어있지는 않은지는 의식적으로 꼭!!! 돌아보며 예의를 갖추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한 개인의 격은 받을 때가 아니라 줄 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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