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돋우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난 <아무튼 여름>

베푸 2021. 8. 28.

 

 

여름휴가때 동해의 서호책방에서 구입해서 ‘이대로 여름이 다 끝나버릴까?’ 아쉬운 요즘 여름의 끝을 붙들고 읽었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은 아니지만 추운걸 너무 싫어하는 내게 여름은 꽤 괜찮은 계절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름이 왜 좋은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옷이 가볍다.

원피스 하나만 쓱 입거나 얇은 옷을 걸칠 수 있다. 입고 벗는데 드는 시간도 에너지도 적다. 가장 미니멀한 패션의 계절이 아닌가?

 

-샤워를 하고 나왔을때 기분이 좋다.

겨울엔 옷을 다 벗고 조금 추운 욕실에 들어가서 씻고나와 다시 옷을 다 입어야 하는… 생각만해도 귀찮은 샤워의 루틴이 있다면 여름엔 너무 더워서 땀을 뻘뻘흘리고 찐득해진 몸을 씻고 욕실문을 딱 열었을때의 그 개운함이 엄청나다. 특히 에어컨 켜지않고 불앞에서 한참 요리를 하며 나를 극한의 더위로 몰고 갔다가 시원하게 샤워하고 나왔을때의 그 느낌은 가히 카타르시스라고 표현할만하다. 겨울엔 탕목욕이 제맛이라면 여름은 샤워다.

 

-맥주가 맛있다.

한여름의 맥주만큼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몸이 차서 평소엔 한 캔을 다 마시기도 전에 벌써 위가 아파지는 다른 계절과 달리 여름엔 벌컥벌컥 먹어도 아무렇지 않다. 몸도 준비가 된 모양이다. 한 여름의 온•습도, 그 냄새, 정취와도 맥주보다 여름과 잘 어울리는 술은 없을 것이다.

 

-과일이 많다.

여름은 뭐니뭐니해도 과일과 채소가 풍성한 계절이다. 평소에도 집에 종류별로 3-4개 이상의 과일이 상주하는 과일러버에게 여름만큼 훌륭한 계절은 없다. 그 중에서도 내 사랑 말랑백도를 만날 수 있는 때가 바로 여름이다. 올해는 뜨거운 태양과 마른장마 덕분에 단맛이 한껏 올라온 과일들을 먹을 수 있었다. 내 사랑 말랑 복숭아도 몇박스나 먹었다.

 

-여행의 계절이다.

사실 여행을 하기엔 봄가을이 더 좋은 날씨지만 긴 여름방학과 여름휴가 때문에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진이 빠지도록 다닌 기억이 더 많다. 대학때 무거운 배낭을 지고 끙끙대던 추억부터 곰의 생일마다 갔던 여행도 여름이고, 겨울에 여행을 갔어도 여행지의 계절은 여름이었던 적도 여러번이다. 그런 경험이 쌓여서인지 여름은 좋은 추억들이 참 많은 계절이다.

작가가 여름 예찬을 하며 애정을 드러내는 책을 읽다가 생각해본 여름의 장점이 이 정도라니…

덩달아 나도 여름이 더 좋아진 기분이든다.

좋은점을 찾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의 한장면에 미소짓고 새삼 감사한 일들도 있었다.

 

올해는 정말 더웠던 2018년 여름과 비견될만한 더운 여름이었다. 그런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기세를 부리며 맹위를 떨치던 것도 결국엔 다 사그라드는게 자연의 이치다. 내 기쁨도 괴로움도 미움이나 슬픔도 결국엔 잦아들고 끝날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이 오래동안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

 

 

좋아하는 것이 생겨 좋아하는 계절이 더 좋아진다는 말

 

32p.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초당옥수수 덕분에 여름을 향한 내 마음의 농도는 더 짙어졌다.

 

여름의 몸매에 대해 (&이 시대가 강요한 여성성이라는 틀에 대해 ) 공감가는 말

 

45p. 이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었는지 그땐 몰랐다. 몸에 대한 집착은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졌고, 여름인데도 몸매 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게 했다. 늘 ‘보기 좋은’ 몸매를 유지하는 일이 여자로서의 자존심이라 믿었다. 어느 때고 벗을 수 있는 몸, 그럼으로써 언제고 욕망당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가던 나. 그때의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선택받이 위한 물건이었다.

 

46.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건 꾸밀 자유가 아닌 꾸미지 않을 자유니까. 이제는 여름을 앞두고 헬스장에 출근도장을 찍지 않는다. 예쁘고 날씬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으며 그런 몸매를 받쳐줄 작고 짝 붙는 옷을 사지도 않는다. (…)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한다. 욕망당하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인정받지 않아도 나는 마라는 사람으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간다.

 

48p.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내가 가진 자격을 떠올리지 않는 일, 더불어 타인의 자격 역시 판단하지 않는 일. 그것만큼 가뿐한 자유가 없다는 것을 한여름 머슬셔츠를 꺼내 입을 때마다 실감한다.

 

여름에 방영한 언니들의 예능, 삼시세끼 산촌편의 의미 등.

 

122p 하지만 남자들의 쇼가 날이면 날마다 전파를 타고 번번이 ‘새로움’으로 포장돼 만들어지는 이유는 그게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독특해서도 아니다. 그것이 익숙해서이고, 그들이 남자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고 제작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성별이 남자인 탓에 미디어에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만큼 여자들의 목소리는 축소되고 지워진다. 재미있을지 없을지조차 시도해보지 못한 여성들의 아이디어와 이야기는 그렇게 사라진다. 그 결과 TV에는 남자들만 남았다.

답답한 현실에 대해 가만히 앉아 한탄맘 하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것 같아서 일단은 성실한 소비자가 되기로 했다. (…) 여성감독의 작품이거나 여자배우가 주연인 작품이 나오면 일부러 보러갔다. 여성이 주인공이거다 MC, 혹은 제작자인 TV프로그램 역시 될 수 있는 한 챙겨 보려고 했다. 여성 뮤지션들의 음악을 먼저 들었도, 직접 공연장을 찾았다.

(…)

하지만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무언가가 변했다. 특히 금요일 황금시간대에 전국으로 방송된 <삼시세끼 산촌 편>은 내게 더 힘 있는 무언가를 휙 던져주고 총총 떠나갔다.

 

유난히 내성적인 여름덕후의 여름사랑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168p. 여름은 매번 내게 대단한 걸 가져다주지 않는다. 덥고, 지치고, 체력은 점점 후달리고,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사건도 딱히 일어나지 않는다. 그치만… 계속 여름이 좋으니 어쩜 좋을까.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그 마음을 글로 써온 시간 역시 여름을 기다릴 때처럼 설레고 가슴 벅찼다. (…)

지극히 사사로운 여름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별게 아니다. 여름을 즐기는 데 필요한 건 조건이 아니라 마음이라은 것, 순수한 기대라는 것. 내 흑역사들이 여름을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게 될지 몰라도 이렇게 소심하게나마 여름을 아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근사한 추억 같은 거 없어도 여름을 사랑할 수 있다.

 

 

나의 2021년 여름 끝자락에

 

“여름은 담대하고, 뜨겁고, 즉흥적이고, 빠르고, 그러면서도 느긋하고 너그럽게 나를 지켜봐준다. 그래서 좋다. 마냥 아이 같다가도 결국은 어른스러운 계절.

내가 되고 싶은 사람도 여름같은 사람이다. “

 

라고 말하는 한 여름덕후를 알게되어 좋다.

 

 

 

아무튼, 여름(아무튼 시리즈 30)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휴가, 수영, 낮술, 머슬 셔츠, 전 애인…여름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아무튼 시리즈의 서른 번째 책.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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