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 에세이

엄마의 고춧잎 나물

베푸 2021. 10. 20.

 

 

어릴때 식습관이 정말 평생 가는건가?

 

풀풀농장 꾸러미에 고춧잎이 들어있었다.

도시에선 구하기 쉬운 재료가 아니라 한번도 요리해본적은 없었다.

뭘 해먹을까? 생각하는데 제일 먼저 무말랭이가 떠올랐다. 엄마는 무말랭이에 고춧잎이 빠지면 제 맛이 안난다고 했다. 삭힌 고춧잎이 들어가야 비로소 무말랭이의 맛이 완성되는거라고 말이다.

말린 고춧잎 나물도, 고추장에 무친 나물도 생각났다. 그 음식들의 색감과 맛까지 떠올랐다. 최근에 먹은적이 없는데 신기했다.

 

고추장에 무친 고춧잎 나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고추장에 무친 비름나물과 미나리나물 까지 떠올랐다. 그것들도 내가 잘 해먹는 음식이 아닌데 말이다.

 

잘 먹지 않았다고 해도 어릴때 자주 보고 접했던 음식은 다시 좋아하게 되는건가? 나이가 들어서 예전에 안먹던 게 좋아진다는 말은 이런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까?

 

내가 살림을 하고부터 나물은 너무 좋고 자주 먹고 싶지만 막상 잘 만들지는 않는 음식이 되었다. 다듬고 데치고 무치는 그 과정은 참 번거로운데 해놓고 나면 겨우 한 줌이다. 이렇게나 결과가 소박할 수가 없다. 또 제 맛을 내기도 어렵거니와 식구들에게 환영받는 메뉴도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나물을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까지껄 뭐~’ 하며 시크하게 나물을 툭툭 무쳐내는 할머니로 늙고싶다.

 

엄마가 우리집에 왔길래 고춧잎 나물을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배우고 싶으니까 기다리라고, 사진도 찍을거니까 천천히 해달라고 했다.

 

말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역시나 엄마말을 믿으면 안됐다.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나물을 다 삶았고, 양념을 찾아 달라고해서 냉장고를 뒤지는 사이에 계량도 하지 않은 양념을 다 섞었다.

 

그래도 기록해두고 싶었다. 엄마의 고춧잎나물.

 

 

고춧잎을 끓는물에 데친다. (넣다 빼는 정도로 짧게 데친다고 한다. 못봤다 ㅠㅠ)

 

 

물기를 꽉~ 짠다. 풀풀농장 꾸러미라 몇그람인지 알 수 없으나 꽉 짜면 주먹크기정도 되는 양이다.

 

(이미 양념을 다 섞어놔서 확실치는 않지만) 볼에 고추장 1/2큰술, 고추가루1/2큰술, 간장1큰술, 된장1작은술, 마늘1작은술을 넣어 잘 섞는다.

 

뭉쳐진 나물을 털듯이 풀어서 양념이 담긴 볼에 넣는다. 조물조물 골고루 무친다. 참기름을 한바퀴 휘리릭 두르고 다시 무친다. (나물 무치는 이 손짓도 비결인것 같은데 은근 어렵다.)

간은 집어먹었을때 좀 짜다 싶어야 나중에 간이 내려가서 잘 맞는다. 나물의 특징이다. 싱거우면 노맛!!

 

 

귀여운 고추도 달려있는 예쁜 고춧잎 나물 완성!

 

엄마는 이걸 후다닥 만들어주고는 쿨하고 쌩하게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딸 집에 왔는데 왜 자꾸 집에 가려고 하는걸까…)

저녁상에 그 옛날 반찬이 올랐다.

맛있는지 곰도 한움큼씩 집어먹길래 그렇게 먹으면 짜다고 조금씩 먹으라고 했다.(아까운 마음이 살짝 있었..)

 

손도 많이가고 해놔도 내가 잘 먹지도 않던 여러 나물들을 꾸준히 맛보여준 엄마 덕분에 밖에음식과 가공식품을 주로 먹던 와중에도 풀떼기를 잘 먹는 사람으로 살았다.

이제는 나물을 사랑하고 없어서 못먹는 (다소 할매입맛이라 놀림받는) 사람이 되었다.

 

나물을 척척 무치는 할머니가 되기위해 앞으로도 불친절한 엄마의 레시피들을 기록해야지.

 

오늘은 고춧잎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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