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 에세이

지혜로운 귤칩

베푸 2021. 11. 18.

 

어머님이 사과를 보내셨을때 나도 뭔가 보내드리고 싶었다.

 

때마침 제주에서 18년째 유기농사를 짓고 계시는 베테랑 과수원 이웃님의 귤 판매글이 올라와 우리것과 같이 주문을 넣었다.

귤이며 단호박, 비트, 당근 지금까지 구입한 건 뭐하나 실패한적 없는 맛보장 작물인데다 힘들고 어려운 길로만 가시는 존경스런 농부님이라 어머님께도 맛보여드린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귤은 맛을보니 ‘엥?’ 하게 되었다.

극조생 감귤이 보통 조금 싱겁기는 하지만 이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감귤주스를 먹다 놔두면 얼음이 녹아 싱거워진 그런 맛이었다.

 

10kg이나 보냈는데….

보내고도 죄송스런 맘이 들었다. 맛이없어 방치되다 버려질까 걱정도 되었다. ‘유기농’ 이라 좋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올 여름 제주는 너무도 잦은 폭우와 늦장마로 고생이었다고 한다. 힘들게 만든 유기비료를 갖다 뿌리면 비에 씻겨 내려가고, 흙도 질척이고 해를 보며 당도를 높여야 할 시기에 비와서 크지도 못했단다. 귤농사 18년만에 이런적은 처음이라며 농부님은 한탄하셨다.

 

그래서 귤에 맛이 들지 않고 싱거워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자라준 귤이 대견했다.

 

나는 온갖 시트러스류를 사랑하는 인간이라 싱거운 귤도 오며가며 다 먹었지만 어머님께 보낸 것이 내내 마음쓰였다.

 

김장하러 내려갔을때 슬쩍 여쭤봤다.

 

“ 어머님~ 지난번에 보낸 귤이 맛이 없었죠? 좀 싱겁더라고요. 기후위기로 제주에 비가 너무 많이와서 맛이 안들었다네요.ㅜㅜ. “

 

그랬더니 어머님이 봉다리를 쓱 내미셨다.

 

“나 이거 만들었어. 얼마나 맛있는지… 귤 한박스를 내가 혼자 거의 다 먹은것 같애.”

 

귤칩이었다.

 

“ 어머. 어머님 귤칩을 만드셨어요? “

“ 어. 쉬워. 니가 보내준거 썰어서 건조기 넣고 45도에서 10시간 돌렸다. 여기 시골이라도 건조기에서 말려 ㅋㅋㅋ 입심심할 때, 티비보면서, 주전부리로 집어먹었더니 한박스를 다 먹었지 뭐니. 조금밖에 없는데 너도 좀 가져갈래?. “

 

귤칩은 쫀득하고 새콤달콤했다.

싱거운 귤로 만든게 맞나 싶게 농축되어 진한맛이 났다.

 

“우와~ 맛있네요. 유기농 귤인데 이렇게하면 껍질까지 다 먹을 수 있고 진짜 좋은 방법이에요.”

 

“ 어 그래. 내가 이웃집에도 좀 나눠줬더니 이런거 마트가면 한 줌 담아놓고 만원씩 팔더라며 좋아하더라. “

 

자태도 고운 맛있는 귤칩을 보며 안심이 되었다.

지금 나는 책을 읽으며 들고온 귤칩을 씹고있다. 쫀득하면서 새콤달콤하다가 끝맛은 살짝 아린듯 한것이 아주 매력적이다. 자꾸 손이간다.

 

뭐든 물자가 풍부한 때에 태어나 자란 우리 세대는 음식물을 버리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없다.

맛없는거 다 먹고 살찌는거 보다 버리는게 이득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많이 사다놔서 신경쓰였는데 오히려 상해 버리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더라는 말도 들어봤다.

 

가끔 아까워 할 때도 있지만 그건 이 식재료가 내게 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구입한 ‘돈’ 이 아까운 것이다.

 

반면, 우리 엄마세대는 뭐든 감사하고 활용하기에 명수들이다. 귀찮아 죽겠는데 이웃에서 푸성귀를 줬으니 어쩌겠냐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김치를 담그셨다는 사돈어른, 맛없는 귤이 혹시나 짐이됐을까 염려하던 내 걱정을 날려버린 어머님, 남은국 남은 찌개로 특별식을 만들어내는 울엄마.

 

뭐라도 활용하려 애쓰던 그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춥고 더운 우리집> 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10년 전에 경북 영주에서 두 소년을 만났다. 소년들은 할머니와 셋이 살고 있었다. 소년네는 논이 없어 쌀이 귀했다. 쌀에다 밭에서 난 감자와 조를 넣어 먹었다. ‘이 시대에도 감자밥, 조밥을 먹는 어린이들’에 대한 사진과 글을 같이 간 사진작가가 잡지에 실었다. 그 기사를 보고 사방에서 소년네를 돕겠다고 나섰다. 가장 먼저 소년네에게 도착한 것은 쌀이었다. 소년네는 이제 감자밥, 조밥을 먹지 않아서 더 행복해졌을까? 소년을 돕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소년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무엇보다 소년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힘들어했던것은 할머니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할머니가 해주시는 감자밥, 조밥도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했는데 지금은 쌀밥을 먹어도 그리 행복한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예전에는 감자밥, 조밥을 먹으면서 할머니한테 감사한 마음을 가졌는데 쌀밥을 먹으면서부터 할머니가 해주시던 감자밥, 조밥을 무시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진작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세상에 소개한 것을 무척 괴로워했다. “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과연 풍요인가? 그래서 우린 더 행복한가? 생각해본다. 감사하는 마음을 잃고, 아끼는 마음을 잃고, 아까워하는 마음을 잃었다. 때문에 활용하는 방법도, 창조해내는 능력도 잃어버렸다. 소년이 할머니의 조밥을 무시하게 되었듯 낭비에 익숙하고 무시하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감자떡은 보관기술이 없던 옛날에 감자를 잘못 보관해 썩게되면 그게 아까워 활용할 방법을 찾다 만들어 낸 음식이다. 이미 썩어버린 감자도 아까워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회색빛깔에 쫀득한 맛있는 감자떡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풍요가 만든건 낭비와 부족한 상상력 뿐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후세에 물려줄 것이 있을까?

 

맛없는 귤로 만든 어머님의 지혜로운 귤칩을 먹으며 과연 미래세대에게 내가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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