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 에세이

슈톨렌

베푸 2021. 12. 22.

 

 

2-3년 전 내가 만든 슈톨렌

독일의 12월은 통째로 크리스마스처럼 느껴진다. 25일 당일이나 이브에만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좋았던(귀여웠던) 풍습은 매일 하나씩 뜯어보는 어드벤츠칼렌더Adventskalender 였다.

 

주로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인데 1부터 24까지 써있는 번호를 열면 그 안에 초콜렛이나 작은 장난감 같은 선물이 들어있다. 이 달력의 선물은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매일 하나씩만 열어 볼 수 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일찍일어나는 어린이들이 많다는 후문이 ㅎㅎㅎ) 예쁜 그림에 초콜렛이나 킨더조이 같은 것이 들어있는 제품도 많이 팔지만 모니모니해도 직접 만들어 안에 선물을 채워넣는것이 만든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최고다.

 

부부나 연인이 사이즈가 좀 큰 선물을 집안 곳곳에 숨겨놓고 매일 번호를 열면 힌트가 들어있는 쪽지를 확인하는 것도 보았는데 선물도 정말 히트였다. 소금, 양말, 소스 같은 생필품들부터 서로의 취향에 딱맞는 선물이나 화분 , 카드까지…

그렇게 재미있는 12월을 보낼 수 있다면 정말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고 즐겁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해야지~’ 생각은 많이했지만 단 한번도 해본적은 없다 ㅎㅎㅎ

 

슈톨렌도 마찬가지다.

슈톨렌은 강보엔 싸인 아기 예수님을 형상화해 만들었다는 전통 빵이다. 각종 과일말림을 럼에 절여 넣고 가운데 마지판이라는 아몬드 페이스트를 원통형으로 넣은 뒤 정말 아기를 싸듯이 반죽을 말아 굽는다.

절인 과일과 술이 들어간 물기가 거의 없는 빵인데다 겉에 슈거파우더까지 듬뿍 뿌려서 잘 상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숙성되어 더 맛있어진다. 이걸 대림절에(크리스마스 약 4주전) 구워서 얇게 한조각씩 매일 잘라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나는 그런 문화를 접하며 독일 사람들은 어쩌면 정말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정과 기다림을 즐길 줄 알고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나는 마지판 특유의 향을 안좋아해서 이 시기가 되면 마지판 없이 슈톨렌을 만들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도 슈톨렌을 판다. 2-3년 전 부터는 동네 빵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슈톨렌 얘기가 나온김에 삼천포로 잠깐 빠지자면 슈톨렌과 잘 어울리는 음료는 커피가 아니다.

달달하고 향긋한 슈톨렌엔 커피보다는 시트러스를 섞은 따뜻한 차를 마셔야 풍미를 온전히 느끼며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모니모니해도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글뤼바인이(Glühwein)찰떡궁합이다. 우리에겐 프랑스식 ‘뱅쇼’ 가 더 익숙하지만 글뤼바인은 크리스마스와 뗄 수 없는 독일의 와인 음료다. 추운 날 덜덜 떨다가 집안에 들어와 따끈한 글뤼바인 한 잔 마시면 몸이 노곤노곤 해지면서 훈훈해진다.

 

슈톨렌이 기원한 남부의 드레스덴에선 크리스마스에 집채만한 슈톨렌을 마차에 끌고 퍼레이드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글뤼바인을 위한 컵도 지역마다 따로 있다. 보증금을 내고 마시다가 반납을 해도 되고 기념으로 가져도 된다. 다음번 크리스마스엔 드레스덴에서 오리지널 슈톨렌과 글뤼바인을 먹자고 친구랑 얘기했는데…

(언제 갈 수 있을까? 가긴 갈 수 있을까? ㅠㅠ

크리스마스 마켓도 안열리겠지? ㅠㅠ)

 

 

올해만큼 크리스마스 느낌이 안나는 때가 또 있을까 싶다. 길에 가며 캐롤 한번 들은적이 없고, 마음도 여유롭지 않다.

산책하면서 만난 크리스마스 장식에 미소 지었던순간이 크리스마스 느낌(?)의 전부였던것 같다. 코로나로 누구나 어려운 때를 겪고있지만 올해는 우리가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곰이 퇴근길에 슈톨렌을 사왔다.

 

예쁜 상자에 들어있는 귀여운 슈톨렌을 보니(사이즈가 상당히 미니미니함)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슈톨렌을 얇게 잘라 하나 먹어보았다.

아직 속이 좋지 않아 한조각만 먹었는데 마지판을 바르고 그 위에 건과일을 올려 돌돌 말았나보다. 내가 거슬려 하는 향도 적고 맛있었다. 지난번 키르쉬토르테를 맛있게 먹었던 동네 빵집인데 ‘독일에서 빵을 배우셨나?’ 싶었다. ㅎㅎ

 

슈톨렌 덕에 갑자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났다.

 

한국재료로(오렌지가 아닌 유자를 넣는다 ㅎㅎ) 글뤼바인 맛있게 만드는 법을 울 슈타인 샘한테 전수받아 나 그거 좀 잘 끓이는데… 집에 적당한 와인도 많은데… 끓여? 하는 의욕도 생겼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4일 앞두고 이제서야 소소하게 집안 한구석에나마 장식을 했다 ㅋㅋㅋ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

당연하지 않아서 더 간절해진 것들.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언제 또 당연해지지 않을지 모르는 이 시간을 탓하고 원망하거나, 무기력하게 기다리기만 하며 보내지는 말아야겠다.

 

할 수 있는걸 찾아하고 최대한 재미있고 행복하게 보내야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는 말은 항상 기뻐할 만한것이, 늘 감사할 거리가 내게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찾아서 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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