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돋우다

긴긴밤을 견디게하는 작은 연대의 한 고리가 되길 - <긴긴밤>

베푸 2021. 12. 23.

 

이 책을 구입할때만 해도 나는 알지 못했다.

긴긴밤 이라는 이 책의 제목이 얼마나 슬프고 아득한지, 코뿔소의 뿔은 왜 부러진듯 뭉툭한지, 왜 초원에 어울리지도 않는 펭귄과 함께있는지…

 

어린이 문학상 대상작인데 이렇게 심오할 수 있는 것인가? 다 읽고나면 친구 딸내미에게 책을 넘겨주기로 약속했는데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어린이에게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이되었다.

 

그림이 참 따뜻하고 예쁜 책이라 ‘코뿔소와 펭귄의 종을 초월한 우정과 도움을 준 좋은 친구들의 이야기’ 쯤으로 기억했다가 어른이 되면 꼭 다시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릴때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메리포핀스>였다. 비디오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다시보고 책도 읽고, 고등학교때인가? Dvd가 나오자마자 용돈을 모아 사기도 했다. 우산을 타고 온 보모와 함께하는 이야기, 그림 속으로의 여행, 웃으면 천정위로 붕붕 뜨고, ‘슈퍼칼리프래글리스틱엑스피알레도셔스’ 라는 기괴한 단어를 읊고, 굴뚝청소부 아저씨와 지붕위를 뛰어다니는 장면들이 너무 좋았다.

 

얼마 전 <메리포핀스2>가 나와서 오랜만에 다시 보았는데 어른이 되어 N차 관람한 메리포핀스는 그 이상의 작품이었다.

정신나간 퇴역장군을 이해해주는 지역공동체,

악역인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고뇌와, 여성인권과 고용불안, 불합리한 사회문제등 여러 모습들이 보였다.

 

우산을 타고 날아온 괴짜 보모의 이야기보다 더 희안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지만 비둘기 밥을 위해 2펜스를 나누는 정도의 마음으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과 ‘슈퍼칼리프래글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 를 외치던 기억이 있다면 이상한 세상은 좀 더 견딜만 할 거라는 얘기를 하는것 같았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긴긴밤>은 그런 작품이 될 것이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나와 코뿔소를 찾아다닐때도, 아내와 딸을 잃고 괴로워 할때도, 동물원에 갇혔을때도, 바람보다 빨리 달리고 싶었던 앙가부와 헤어졌을때도, 치쿠와 알을 돌볼때도, 치쿠를 잃고 펭귄과 바다를 찾아헤맬때도 노든은 긴긴밤을 보냈다.

 

108p. 예전의 노든이었다면 인간들을 다 뿔로 받아 버리고 트럭도 부숴 버리고 그곳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긴긴밤 덕분에 더 이상 어리석지 않았다. 노든과 나는 인간들이 잠든 틈을 타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긴긴밤은 분명 견디기 힘든 시기였지만 긴긴밤 덕분에 (노든과 아내가, 노든과 앙가부가, 치쿠와 윔보가, 치쿠와 노든이 , 노든과 펭귄이) 너무도 다른 이들이 서로에게 귀 기울이며 이해할 수 있었고, 함께보낸 긴긴밤은 우리가 우리가 되는 시간이었으며, 그 긴긴밤이 우리를 더 이상 어리석지 않도록 만들었다.

 

12p.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눈이 잘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자와 함께걷고, 다리를 절뚝거리면 튼튼한 자에 기대걷는 것이 ‘순리’ 임을, 그렇게 작지만 위대한 연대가 이어져 버림받은 알 하나를 전쟁도 이겨내고 광활한 사막을 건너 바다에 이를 수 있도록하는 큰 힘을 일으켰다는 것을 내내 기억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대개는 화가 났으며 때때로 슬프고 응원을 보내다가 마지막엔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또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 언제보다 평화로워야 할 ‘크리스마스’ 시즌에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끔찍한 일들이 가슴아프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노든을 만들어야 그 극악스런 탐욕을 멈출 수 있을까?

 

124p. 나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족들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나간 노든의 아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죽지 않은 연인을 뒤로하고 알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던 치쿠의 심정을, 그리고 치쿠와 눈을 마주쳤던 윔보의 마음을, 혼자 탈출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던 앙가부의 마음을, 코끼리들과 작별을 결심하던 노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ㅇㅇㅇ

멸종이라는 단어를 자주 쉽게 접하는 시대, 우리가 수많은 노든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비인간동물의 입장에서, 한 생명의 입장에서 …

 

내가 별 생각없이 하는 모든 행동과 소비와 생활의 끝에 수많은 생명들이 연결되어 있다.

부디 그 사실을 잊지않고 살아가길…

 

125p.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잠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노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 노든은 나를 알아보고 내게 다가와 줄 것이다. 코뿔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른 펭귄들은 무서워서 도망 가겠지만, 나는 노든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코와 부리를 맞대고 다시 인사할 것이다.

 

 

코와 부리를 맞대고 다시 인사하는 순간은 (그리고 그런 순간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아는것 만으로도 ) 그 어떤 보화보다 값질것이다.

 

 

긴긴밤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긴긴밤』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와 코뿔소 품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 그땐 기적인 줄 몰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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