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돋우다

섭식일기

베푸 2021. 4. 17.

 

페스코 채식을 한 지 1년 반이 넘었다.

지금 나는 좀 더 완전한 채식을 하고 싶은 나와 이미 맛도 조리법도 익숙한 고기가 생각나는 나가 공존하는 상태다.

 

생선이나 해산물까지 먹고 있으니 육식주의자도 아니고 채식주의자도 아닌 중간에 낀 어정쩡한 사람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실제로 페스코는 semi-vegetarian으로 분류된다.)

환경을 위해 탄소배출이 심하다는 육식을 거부했지만 공장식 축산의 잔인한 실상을 알고부터 동물권에도 조금씩 관심이 간다.

 

팔자에도 없는 채식주의자가 되기까지....

채식에 처음 관심이 생긴건 이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플라스틱 안쓰고 텀블러 사용하는것보다 고기 한번 덜 먹는게 환경에 더 좋다." 내가 플라스틱 하나, 비닐 한 장 안써보겠다고 시장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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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요즘 비건을 주제로한 책이 많이 나온다. 비건이 되고싶지만 지금 내가 즐거이 가능한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 나는 다른 페스코 베지테리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다.

 

우선 육류부터 끊고 당분간 해산물은 먹기로 했다. 이전처럼 한 번에 모든 것을 끊었다가 ‘역시 안되겠어’ 이런 나약한 소리를 하며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끼는 이들과 어우러져 즐길 방편을 마련하면서 천천히 건너가자고 마음먹었다.
28p
 

섭식일기

식탐과 밀당하는 채식 지향인의 본격 섭식 에세이나를 사랑하고 타자를 존중하는 미각의 여정‘섭식’만큼이나 종을 막론하는 활동이 또 있을까. 먹는 것의 종류는 제각기 다를 지라도, 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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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채식을 하며 겪은일, 생각한 것들을 에피소드로 엮은 에세이다.

 

페스코 채식인이지만 채소위주의 식생활을 하려 노력하고, <나의 문어선생님>을 본 뒤론 더 이상 문어를 먹지 않으며, 무엇을 먹고 먹지 않을것인가 언제먹고 얼마나 먹을것인가에 대해 세심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서 결정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남자친구가 꽃게러버라고 설명할때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갑각류 러버이기 때문이다. ㅎㅎ

갑각류를 너무 사랑하지만 동남아시아에서 양식한 새우는 먹지 않는다. 대부분의 동남아 새우는 지구탄소의 저장고이자 천혜의 습지 ‘맹그로브나무 숲’을 파괴해서 새우양식장을 만든 뒤 항생제를 들이부어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존 원시림을 파괴하여 얻는 맥도날드 햄버거 패티와 다를게 없다. 경제적으로만 따져도 맹그로브 숲을 파괴해서 양식장을 만드는건 엄청 난 손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당장 내 눈 앞의 이익을 포기할만큼 현명하지 않다.

 

비건이라고 해도 GMO작물과 팜유가 들어간 음식은 최대한 피하려고 하고, 아보카도도 아주 가끔만 먹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환경을 파괴하고 독성물질을 바다로 버리는 연어는 절대 먹지 않는다.

 

 

뭐 그렇게 복잡하고 피곤하게 사느냐고 할 수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다른 생명과 환경에 피해를 덜 주며 살고 싶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안 먹을지, 언제 먹고 얼마나 먹을지 정하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공이드는 일이고, 노력해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내 속을 챙기는 태도가 기반이 되어야 남의 속도 제대로 배려할 줄 알게 될 것 같다.
129-130p

 

앞으로도 무엇은 먹고 무엇은 먹지 않을지를 끈질기게 고민하고 탐구할 것이다. 나의 존엄 그리고 다른 생물과의 공존을 위해서
194

 

나는 저자의 고민에 매우 공감하며 글에서 다른 생명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읽었다. 그리고 그건 어머니로 부터 물려받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가족이야기가 참 좋았다.

 

그리고 내가 페스코 채식을 해서 비건들이 나를 무시하던, 육식인들이 왜저러나 이해를 못하던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이전에 나는 남들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내가 틀린 게 되는 것 같았다. 횡설수설 말을 하다가 이해받지 못해 울분에 차서 울음을 터뜨리고 나면 내 안에서 뭔가가 무너져버린 느낌이 들었다.
(...)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는 무수한 말들 앞에서 우리는 종종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내 마음에 어떤 심지가 있다면 말은 아무것도 아니다.
(...)
이제는 서두르지 않기로 한다. 설령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해도, 아직 언어가 되어 나오지 못한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단단하게 지킬 줄 알아야 한다.
191-193p

 

책을 읽는 내내 말이 잘 통하고 가치관이 비슷한 친구를 앞에두고 수다떠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책을 덮을때 쯤 이 친구가 더 좋아졌다. 무엇이든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를 움직일 각오가 된 사람들을 존경한다.

 


51p. 폴 매카트니는 “도살장 벽이 유리로 되어 있다면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될 것” 이러고 했다는데, 절반만 맞는 말 같다. 잔혹한 실상을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알려나가야 마땅하겠지만 우리들 인간이란 그 실상을 알고도 눈잎의 귀찮음, 게으름, 즐거움에 쉽게 굴복하는 존재인을 나는 안다.

 

66p. 꼭 필요한게 아니라면 왜 살생과 착취를 지속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창출을 위해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너무나 장려되는 행위다. 이것이 동물 착취와 만나면 그야말로 무한대의 고통이 양산된다.

 

68p 매번 반성하고 다시 생각하기를 게을리하지 않기로한다.

 

163p 하지만 실은 나는 죽임당하는 동물을 위해 채식을 결심하지 않았다. 그 결심은 오히려 이런 것이다. 틀린 일인 줄 알고도 계속해서 가담하는 비겁한 자신으로부터 나를 구한다. 적절한 금기로 생활에 활력이 돌게 한다.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정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삶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벼운 마음으로 맛있게 먹는다.

 

206p 달아나도 소용없을 것이면, 어디든 발붙인 곳에서 조그만 저항을 계속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식탁위의 폭력을 거부하고, 쓰레기를 덜 만들기 위해 애쓸 것이다.

 

209p 진짜 좋은 것이 무엇인지, 우리 주변을 무엇으로 둘러싸야 그것을 욕망할 수 있는지, 함께, 더 자주 얘기 나눴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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