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돋우다

생명을 먹는 것의 책임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베푸 2021. 6. 14.

 

 

햇수로 2년째 페스코채식을 해오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이대로 가다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인류의 종말을 볼지도 모르겠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탈것에서 나오는 탄소보다 축산업이 배출하는 탄소가 많다고 한다.)

 

페스코 채식이기 때문에 모든 육지동물은 먹지 않지만 해산물과 생선은 먹고 있는데다 채식주의자가 아닌 가족들에겐 ‘동물복지’ 고기를 사다가 가끔 요리도 해준다. 그러면서 늘 살아있는 생명을 먹는것에 대해, 어디까지가 윤리적인가? 고민해왔다.

 

‘공장식 축산’ 에 대해선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건 평생 더럽고 좁은 우리에서 몸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사는 가축동물의 동물권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에게 절대 좋은 방식이 아니다.

 

170p. 2019년 도체 검사 결과 다양한 항생제 중 암피실린에 대한 내성률이 소에서 16%, 돼지에서 63%, 닭에서 83%로 확인되었다. 가축과 균의 종류에 따라 그 비율은 다르지만, 거의 모든 가축에서 다양한 항생제 내성균이 검출된다.

(…) 축산물에 남아있는 항생제 내성균을 사람이 직접 먹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가축에게 투여한 항생제의 80%는 배설물과 함께 배출된다. 분뇨에 포함된 항생제에즌 정화 기준이 없다. 그 때문에 항생제는 하천으로 유입되고 축적된다. (…) 항생제와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가 수돗물 원수로 다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학계의 경고다.

 

81p. 생태계에 유입되는 약품의 분해속도와 누적량을 인간은 예측할 수 없다. 돼지와 내 건강은 연결되어 있다.

 

175p. 축산없은 사료회사, 의약회사, 가공식품화사 등이 얽힌 거대한 산업군이다. 업계는 값싼 식품이 빈곤 문제를 해결 할 것이라고 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었고, 식품 불평등은 커졌다. 업계는 비용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전가한다. 온실가스 배출로, 지표슈 사용으로, 지하수 오염으로, 열악한 노동으로, 보건 비용으로 사회가 값을 치르게 한다.

 

그러면 내가 가끔 구입하는 자연양돈 동물복지 농장의 가축들은 어떠한가? 자연양돈은 동물이 가진 원래의 습성을 살리고 인공의 것을 최대한 배제하여 키우는 방식이다.

 

10p. 거창하게 표현하면 예의를 갖춘 고기랄까. 생명을 정성 들여 키우고 그 생명을 죽여서 먹는 과정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고귀함을 지킨다는 면에서 채식의 연장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결국 잡아먹힐 거라면 살아있는 동안 행복했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완전채식(비건) 만이 옳은가?

식물을 제외한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은 생명을 먹는것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답을 얻기위해 저자는 직접 돼지를 키우기에 이른다.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동물윤리나 채식을 다루는 다른 책들처럼 비장하지 않다.

글도 재미있고 돼지를 데려오는 것부터 집을 만들고, 밥주고, 키우고, 잡는 상황까지도 (물론 겪지 않은 내 입장에서) 약간 코미디다. 그런데 순하게 이야기 한다고해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겪은일을 바탕으로 부드럽게 하는 말이라 오히려 더 힘이 실리고 설득력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공장식 축산에 대해 ‘이해(?)’ 하게 되었다. 돼지를 데려오는 일부터 시작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사료대신 여러 농업 부산물을 구해다 먹이는일, 돼지가 진흙탕 속 목욕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일, 마지막으로 고통없이 한번에 잡는 일에 이르기까지… 쉬운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동물의 습성을 지켜주는 방식으로는 절대 지금과같은 어마어마한 고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

동물은 태어날때부터 고깃덩어리이고 감정이고 습성이고 나발이고 사이즈만 커지면 팔아야 하는 상품으로 보아야 늘어가는 수요를 맞출 수 있다. 그 조차도 정부의 어마어마한 보조금을 들이 부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나는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의 문제도 생각해 보게되었다.

이 책에 나온것처럼 돼지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한번에 보내려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힘을 합쳐 잡는(힘을 합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일은 현대 사회에서 불가능하지만 이런방식의 육식이 가능하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동물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지고 모두가 모여 돼지를 잡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는건 생명을 거둬 그 살을 취하는 사람의 책임 같은거라고 느껴졌다.

137p. 내 몸의 저항을 주도하는 정체는 살아 있는 생명을 망치로 내려친다는 것, 생명을 해치는 행위에 대한 거북함이었다. 내려칠 수가 없었다. 돼지도 생각이 있고, 피가 흐르고, 숨을 쉰다는 그 동질감이 거부감이 되어 나를 압도했다. (…) 그럼에도 나를 돼지 앞으로 데려다 놓은 것은 어떤 예의였다. 돼지를 취할 사람으로서 직접 잡아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 돼지를 마주할수록 그 마음이 커졌다. 잡아먹는게 배신이 아니고 남의 손을 빌리는 게 배신 같았다. 남이 죽인다고 생명을 죽이는 일이 없던 일이 되는게 아니다. 책임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목숨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했다. 남의 살을 먹는 일, 생명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 그동안 나는 너무 쉽게 살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일을 누구한테 맡기고 있나? 더럽고, 불편하고, 위험해서(분뇨로 인한 가스에 질식사 하는 일들도 발생한다) 내키지 않는 그 일을 이주노동자 등 힘없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우리가 먹는 고기를 위해 일하는 그들을 더럽고 냄새난다며 차별한다.

 

151p.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현대인은 “고기를 식탁 앞으로 가져다놓는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면서” 우리가 미개하다고 했던 옛사람들보다 “훨씬 더 동물처럼 먹고 있다” 고 말한다.

우리는 더이상 가축을 직접 잡지 않는다. 먹기 좋게 포장된 상품으로 만난다. 손질할 필요도 없다. 간단히 굽거나 볶기만 하면 되는 식재료일 뿐이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들을일 없으니 돼지에게 미안한 일도 없다. 상품으로서의 고기만 취하는 현대인은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동물권 비건들이 주장하듯이 동물도 우리와 똑같은 생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를 아끼고 동물복지법을 마련한 채식주의자(히틀러)가 유대인들은 무참히 학살한 일, 반대로 인간의 혀의 유희를 위해 동물을 가장 잔인한 사육방식으로 키워 학살하는 일엔 나 아닌, 나와 가깝지 않은 대상의 생명은 경시하는 태도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야 한다.

 

184p. ‘먹방’ 의 시대다. 고기의 식감에 대해, 육즙에 대해 우리는 말한다. 단백질 보충이나 힐링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고기도 한때 숨 쉬는 생명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고, 따뜻한 피가 흘렀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죽어서 우리에게 오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매년 가축 전염병이 돌고, 축종별로 돌아가며 수많은 동물이 땅에 묻힐때에야 우리는 비로고 가축이라는 존재를 본다.

 

185p. 자연양돈 돼지를 만나고도 마음 한편은 어쩐지 불편했다. 돼지도 죽는 순간 울부짖었다. (…) 돼지도 살아 있는 동안 존중받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가축과 인간이 지난 수천년간 평화로웠듯이 말이다.

싸게 많이 먹는 소비문화는 생명을 억압하는 사육 방식, 미래 자원까지 고갈시켜가며 생산하는 ‘공장식 농장’과 연결되어 있다. 이 소비와 생산의 고리가 가축과 인간의 관계를 왜곡한다. 이 왜곡이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적당한 가축은 인간이 먹을 수 없는 농업부산물(멍든사과, 콩꼬투리, 옥수수대 등)을 처리하고 그 분뇨는 다시 땅을 비옥하게 한다. 그렇게 비옥해진 땅은 탄소를 가두어 지구 생태를 건강히 하고 우리가 먹을 작물을 키운다. <사랑할까, 먹을까> 에서 유기농농부님이 자연양돈을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한 말이다.

 

그런데 그 ‘적당한’ 가축은 지금처럼 지구 동물의 65%를 차지하는 양은 아니다. (지구상 동물은 65%는 사람이 키우는 가축, 30%가 인간, 나머지 5%만이 야생동물이라고 한다. ) 매일같이 고기를 먹고, 고기 국물이나 고기양념이라도 들어간 것을 빼놓지 않고 먹으며, 특별한 날엔 고기를 더 많이 먹는 지금같은 식생활은 인류의 종말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185p. 공장식 축산이 최악의 동물 학대라는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권이 아니라 인간 윤리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가축은 우리 사회의 이면이고 우리 자신이다. 생명에 대한 감각을 잃은 것,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벌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기를 안먹거나 적게 먹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온통 항생제와 오물, 스트레스로 가득한 삶을 살다가 비참하게 죽은 독으로 점철된 살들을 건강을 위한답시고 먹는것을 그냥 보고만 있기 어렵다.

정말 불쌍한건 오히려 우리 스스로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방식은 분명 잘못되었다.

 

뭔가 해야한다.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가 될 수 없다면 자연양돈, 자연방목의 동물복지 방식으로 전환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전환은 지금과 같은 고기수요가 있는 상황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밀집사육을 그만두어야 동물복지가 가능하다.

 

지속적으로 건강한 고기를 먹기 위해서라도 고기를 유의미하게 덜 먹을 필요가 있다.

 

186p. 고기의 이면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기는 3분 요리처럼 ‘띵동’ 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고기 이전에 돼지가 있고, 돼지는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어떤 고기를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이면까지 알고 선택할 때에야 비로소 진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식탁 위의 고기가 아닌 살아 있는 돼지와 함께한 1년동물을 키우고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카카오의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가 주최한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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