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돋우다

공감과 이해에 위로받은 시간 -<나는 식물을 따라 걷기로 했다>

베푸 2021. 11. 13.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5층짜리 오밀조밀한 아파트가 정겹게 있던 동네에서 20층이 넘는 브랜드 아파트들이 연속으로 세워지는 공사판이다.

 

여기도 턱 저기도 턱 눈돌리는 곳마다 턱턱 막힌다. 스카이라인도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집 거실 창문으론 이제 휘영청 밝은 달대신 24시간 꺼지지 않는 아파트 브랜드 간판이 보인다.

 

아파트 단지들 사이론 내가 좋아하던 길이 있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크리스마스 영화에 나올법한 거대한 침엽수가 우리집이 닿는 골목까지 쫘악~ 늘어서 있는 길이었다.

눈이 펑펑 오는 날 이 길을 걸으면 정말 환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족히 40년은 됐을 이 나무들이 몽땅 잘려나갔다.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어서 그랬는지 뽑은것도 아니고 잘라냈다. 초록잎을 아름답게 늘어뜨리던 나무들은 울창한 잎과 줄기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잘려나간채로징그럽게 뻗은 뿌리를 아스팔트위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인어공주에 나오는 마녀 울슐라의 다리를 연상케했다.

 

그 길을 아는 이웃들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스카이라인이 답답해진걸 공감하는 사람은 있었지만(심지어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잘린 나무에 대해선 공감하는 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새로 다른 나무 심을거야” 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사람의 때와 이익에 맞춰 생명을 그렇게 무참히 앗아가놓고 안타까워 하는 마음조차 없다니…

혼자 있어 외로운 게 아니라 이해하는 사람이 없어 외롭다는 <습지주의자>의 저자 김산하 박사의 글이 떠올랐다.

 

그런데 한수정 작가의 두 번째 책을 만나 나는 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주 앉아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며 한참이나 수다를 떤 기분이었다.

인생에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큰 복이다. 그런 작가나 작품을 만나는것 또한 마찬가지다.

 

122p-125p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포클레인이 벚나무를 내리찍기 시작했다. 무거운 쇳덩이가 인정사정 없이 나무를 여러 번 내리쳤고 요란한 소리가 동네에 울려퍼졌다. 우지직 하는 소리에도 나무는 쓰러지지 않고 계속 버텼고, 포클레인 기사는 오기가 난 듯 더 강도를 높여 내리쳤다. 지켜보는 사람의 입을 다물 수 없게 하는 무자비한 강타였다.

(…) 사람이 죽었다면 붉은 피가 낭자했을 것이, 한창 꽃을 피운 나무가 죽으니 바닥은 꽃밭이 되어 있었다. 어지럽게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을 보고 있으니 벚나무와 포클레인 사이에서 벌어진 혈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

끌려가는 나무를 따라 떨어지는 꽃잎들의 발자국을 바라보며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칠게 찢긴 나무의 잔해와 길 위에 떨어진 수많은 꽃잎들이 그저 현실이 아닌 듯 느껴졌다. (…)

잔인하다는 말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

나무 한 그루가 이럴진대 산 하나를 없애는 일은 상상할 수 없이 끔찍한 일이다. 나는 어떻게 지금껏 나무를 베어내고 산을 없애는 현장을 지나치면서도 그토록 태연할 수 있었는지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득해졌다. (…) 바로 내 옆에서 살아 숨 쉬던 나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러했다. 그것은 부재라기보다는 죽음이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선혈이 낭자하게 꽃잎을 떨어뜨리며 생을 마감한 벚나무가 안타깝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내 마음을 톡 건드려 위로하는것 같아서였다.

 

미세먼지나 폭염 폭설등의 기상이변을 느끼며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지구의 상태를 걱정하는 사람.

 

139p. ‘너희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너희가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다시 어른이 되었을 때는?’ 생각만으로도 두렵고 무서웠다. 내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그다음 세대가 태어날 때에도 자연이 여전히 생의 풍요와 행복을 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 나 한사람의 변화가 곧 세상의 변화라는 걸 아는 사람

 

143p. 그동안 느낀 당혹감과 슬픔, 절망의 감정을 미뤄두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일상 속에 내재한 찌꺼기는 없는지, 세상의 속도를 따르며 나도 모르게 그 일원이 되어 한몫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내 자리에서만큼은 자연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최소한으로 줄어들기를 바랐다. 나는 비록 작고 작은 존재이지만 지금의 이 거대한 흐름 또한 나와 같은 작은 점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나는 작지만 작지 않은 존재임이 분명했다.

 

한수정 작가의 전작 <하루 5분의 초록>을 통해 우리 주변에 있는 식물들을 자세히 관찰함으로써 이웃으로 함께하는 식물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나무 이웃들의 변화와 이름을 알게되는것은 생활의 작은 기쁨을 주었다. 지난봄 내내 그 책을 들고다니며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생명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책 <나는 식물을 따라 걷기로 했다>를 통해 진정한 친구를 만나 속내를 털어놓고 공감을 얻은것같다. 글쓴이의 식물사랑과 자연사랑, 삶을 대하는 책임감 있는 태도를 통해 느끼고 배우는 바도 컸다.

 

식물과 함께하며 치유받고 성장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연의 힘에 대해서도 우리가 그 일부라는 사실도 더 깊게 맘속에 각인 되었다.

 

언젠가 집 앞에 작은 텃밭을 일구며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욕구와 과잉에 있는지를 깨달은 이의 글을 읽는동안 이미 나는 그 꿈을 이룬듯한 편안함도 느꼈다.

 

‘부지런한 삶을 꿈꾼다.’

이 문장은 내가 들어본 희망사항 중 가장 멋진 말이다.

 

그 아름다운 마음을 힘껏 응원하며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식물을 따라 걷기로 했다

식물이라는 나침반을 따라 걷는 초록의 여정자연을 만나 삶의 기쁨을 찾은 식물화가의 이야기『하루 5분의 초록』 저자이자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우리 나무 이름 사전』의 삽화를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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